부강면_역사

근대 초등교육의 산실, 부강초등학교 강당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3.12.12  | 최종수정일 2025.05.02

세종시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합니다.
'마을문화자원'에서는 세종특별자치시 내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장소'를 탐하고,
그곳에 얽힌 기록을 주민이 직접 콘텐츠화한 결과물입니다.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학구열이 엄청난 나라이다. 고대삼국시대 태학(太學)부터 조선시대 성균관과 서당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의 변천도 학구열에 따라 달라졌다. 개항기 서구식 근대교육체계가 이식되면서 오늘날처럼 학교에 등교하는 교육 시스템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을 양성하는 사범교육도 중요했지만, 교육을 이수할 학생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세종특별자치시 부강초등학교에는 근대교육 공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완공된 '부강공립보통학교 강당'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부강초 강당은 전통한옥의 외양을 갖추고, 근대식 교육이 이뤄지던 역사의 산실이다. 지금부터 근대 초등교육의 산실인 부강초등학교 강당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근대 초등교육의 산실


강당(講堂)은 대규모 강의나 강연, 행사를 위해 마련된 건물을 통칭한다. 특히 학교 강당은 각종 학내 행사와 재학생의 知·德·體를 수양할 수 있는 중요 공간 중 하나이다. 근대식 교육체계가 이식되던 개항기 무렵부터 교육생이 머무는 공간 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전통적으로 교육은 높은 자제가 수도 한양에서 관료로 출세하기 위해 학습하던 내용이 주효했다. 물론 지방 곳곳에 향교와 서원, 서당 등이 기초교육 역할을 수행했으나 오늘날의 초등교육과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근대식 교육체계가 유입되면서 수도 한양 이외의 지역에서는 각종 학교설립 운동은 물론이고, 교육생을 위한 공간 마련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부강초등학교 강당도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설립이 이뤄졌다. 1917년 10월 2일 '부강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이래,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숫자는 나날이 증가했다. 특히 부강은 예로부터 금강 수운의 종점 역할을 수행하던 곳으로 물산과 인력이 집합하던 곳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부강공립보통학교에는 이웃지역에서도 수많은 학생이 유입되었다. 따라서 교육을 위한 공간 마련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었고, 마침내 1925년 강당 건축을 위한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10월 17일 낙성이 이뤄지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부강초등학교 강당이 완공되었다.

   

전통한옥의 형상을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

 
1926년 일제강점기에 완공된 부강초등학교 강당은 일제강점기때 지어진 체육관 및 교육시설 중 전통적인 모습이 남아있는 유형유산이다. 특히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익공식 형태를 잘 간직한 것이 특징이다. 나아가 출입문은 들어열개문 형상으로 가설했고, 기단은 가공한 화강 장대석을 외벌대로 쌓았다.
이처럼 전통한옥 건축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공간임과 동시에 1926~2004년까지 약 80년의 세월 동안 부강초등학교 재학생을 위한 체육관 겸 강당으로 활용된 교육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특히 부강초등학교 검도부의 중요 활동 공간으로 사용된 전적이 있고, 각종 학예회 등 부강초등학교의 대외활동에서도 중요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학교의 역사와 함께하는 곳이다.
2023년 11월 30일 방문한 부강초등학교 강당 내부는 오래된 나무 마룻바닥과 상량문이 인상적이다. 80년 전 작은 아이들을 모아 갖가지 행사를 했었을 강당 바닥은 세월 만큼이나 낡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강당 천장에는 상량문이 남아 있다. 상량은 집을 지을 때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굵은 마룻대를 올리는 일이다. 건물의 뼈대가 완성되는 것인데, 이때 땅의 신 지신과 집의 신 택신에게 제사를 지내어 건물에 재난이 없도록 빈다. 상량문은 집의 상량대에 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을 적어둔 문서 또는 문장이다. 부강초 강당 상량에는 '大正十四年陰十月二十五日未時立柱工樑(대정십사년음십월이십오일미시입주공량)'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서 大正十四年(대정십사년)은 서기 1925년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국왕의 연호 표기를 하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陰十月二十五(음십월이십오일)은 음력 10월 25일로, 양력으로 따지면 12월 10일 목요일이다. 未時(미시)는 오후 1시 30분~3시 30분이다. 한자어를 해석해보면, 1925년 12월 10일 목요일 오후 1시 30분에서 3시 30분 사이에 이 강당의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어 마룻대를 올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관이든, 사택이든 어느 형태의 건물에서나 재난을 방지하고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의 면모이다.
 
 


[참고]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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