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읍_역사

세종의 1호 등록문화재, 옛 산일제사 공장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3.12.13  | 최종수정일 2025.05.02

세종시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합니다.
'마을문화자원'에서는 세종특별자치시 내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장소'를 탐하고,
그곳에 얽힌 기록을 주민이 직접 콘텐츠화한 결과물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원도심인 조치원은 전국적으로 우수한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는 공간입니다. 경부선과 충북선이 교차하는 조치원역을 필두로 도심 곳곳에는 과거 조치원의 역사를 간직한 근대시설이 남아있습니다. 그 중 커다란 굴뚝을 만날 수 있는 '한림제지' 공장 부지는 일제강점기 근대 공장시설이 어떤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교보재입니다.

특히 국가등록문화제 제754호로도 지정된 산일제사 공장의 학사관을 필두로 공장 부지 전반이 온전히 남아있는 '舊 산일제사 공장'은 다양한 공간변화를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 알아보면 더 알고싶은 우리 세종의 근대문화시설을 본 글을 통해 살펴보고, 공장 부지는 과연 어떤 공간적 변화를 담고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았던 공간의 변화


오늘날 제사공장이라는 표현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제사(製絲)란 누에고치를 켜서 실을 뽑아내는 행위를 통칭하는데, 가내수공업의 형태가 아닌 공장에서 대량으로 실을 뽑는 곳을 제사공장이라 표현한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오늘 살펴볼 산일제사 공장은 조치원에서 실을 생산하던 공장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산일제사(山一製絲)는 경부선 축선에 놓인 조치원의 입지와 인근 공주 지역의 전통 잠업문화 영향을 받아 건립 당시부터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반도 전역에 근대 잠업을 적극 양성했다. 그 결과 충남 공주에는 잠종장이 대규모로 건립되었고, 조치원과 대전 부근의 야산에는 뽕나무 식재가 적극 권장되었다. 이러한 영향을 바탕으로 산일제사는 조치원을 본거지로 하여 일제강점기의 대표 제사공장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1924년 공주에 건립된 충청남도 잠종장 전경 (충남잠업사(2006) 발췌)
1924년 공주에 건립된 충청남도 잠종장 전경
(충남잠업사(2006) 발췌)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 산일제사는 더 이상의 공장 운영이 힘들어지자 1948년 경 문을 닫았다. 이후 한국전쟁 기간 중 파괴된 조치원여자고등학교의 임시 교사로 활용되었고, 1969년부터 크라프트 종이를 생산하는 '한림제지' 공장으로 변모했다. 한림제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운영을 이어갔으나, 공장의 노후화와 대외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현재 남아있는 제사공장 부지의 건물은 대부분 한림제지에서 활용하던 공간이다.
지붕 마감이 없어진 공장동과 옛 굴뚝
지붕 마감이 없어진 공장동과 옛 굴뚝

폐산업시설을 재생시키다


2000년 문을 닫은 한림제지는 공장을 방치시켰다. 그 결과 근대산업시설이자 조치원 산업화의 상징인 제사공장 부지는 슬럼화되어 방치되기에 이르렀다. 지역의 주민은 폐공장 부지인 이곳을 기피했고, 지역주민은 어서 이 공장 부지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기만을 갈망했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이 공장 부지를 매입한 후 조치원읍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한 재생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세종시에서는 산일제사 공장 지대를 원형 보존한 상태에서 과거 산업시설에 대한 유산으로 일부를 남기고, 또 다른 일부는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단순히 공간을 조성해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고, 누구나 근대산업시설에 대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색다른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조치원 구 산일제사 공장 부지의 앞날을 본 아카이브를 통해 살펴보자.
단아하게 조성된 학사관의 모습
단아하게 조성된 학사관의 모습

 
[출처]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지역N문화
<충남잠업사> 2006, 충청남도 농업기술연구원.
 
ⓒ 2023, 세종시 마을기록문화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