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기록, 월담 / 세종시_역사

꺼지지 않는 3월의 횃불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4.03.07  | 최종수정일 2025.10.15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다보면 3월의 시작인 1일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모두가 힘을 합쳐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3월 1일, 3월 8일, 3월 15일…, 3월에 이루어졌던 독립운동의 방점은
달력의 몇 군데에 찍혀 있지만 누구나 조국을 되찾으려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당시 3·1운동은 전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만세 시위로 이루어졌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종시 곳곳에서도 독립운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여러 기록들을 통해 세종시의 독립운동을 알 수 있다.

먼저, 일제 헌병대의 <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의하면 舊 연기군을 비롯한 충청남도 지역에서
총 65회의 만세시위가 있었는데 현재 세종시 지역에서는 13회
(연기군 9회, 부강면 3회, 장군면 1회)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인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백서」를 찾아보면,
세종지역 만세운동의 특징을 세 가지로 알려준다.

첫 번째, 횃불형 만세시위가 주를 이루었고,
두 번째, 지방이었음을 감안할 때 대규모 행진형 시위였고,
세 번째, 비폭력시위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횃불형 만세시위라는 특징을 알 수 있는 다른 기록이 있을까?
기록을 찾다보니 3·1운동에 대한 연구용역 자료에서 연기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진광의
횃불 시위에 대한 일제의 판결문이 있었다. 

 
유진광 독립운동가의 판결문 중 일부가 오래된 양식에 한자로 쓰여져 있다.
유진광 독립운동가의 판결문
(연구용역 자료 발췌)
관리번호 : CJA0000973 문서번호 : 772805 성명 : 유진광 쪽번호 : 1040-1041
위 보안법 위반 피고사건에 대해 조선총독부 산전준평(山田俊平)이 관여 다음과 같이 심리 판결한다.
주문 피고 유진광을 태(笞) 90에 처한다.
이유 피고 유진광(兪鎭廣)은 현재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각지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이와 같은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대정 8년(1919년) 3월 30일 거주지 충남 연기군 서면 각 리에서 모닥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는 것을 보고 동일 오후 9시경 자택 뒤 쪽 산에 올라 횃불, 모닥불을 붙이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동리 주민 6명이 와 서 함께 만세를 불러 치안을 방해한 자이다.
                                                               출처 : 「세종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년간 기록화사업 연구용역 보고서 발췌

해당 연구용역 자료에는 독립운동가 유진광의 판결문 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운동가에 대한
일제의 판결문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가 남면 양화리 뒤편 아월산 꼭대기에서 주민 약 100명과 집합하여 불을 피우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동면에서도 동일하게 만세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일본정부의 판결문을 통해 그 당시 일반 주민들일 포함된 독립운동가들의 횃불형 만세시위는 연기군에서 많이 이루어졌고, 일제는 보안법에 의거해서 징역형이나 태형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러한 독립운동 의지를 꺾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연구용역 자료나 역사서를 비롯해 다담에서도 세종시 향토지를 통해 우리 마을의 독립운동을 알 수 있다. 다담
(다담-마을메뉴-읍면동역사자료메뉴)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마을기록문화관에 방문한다면 원본을 볼 수 있는 향토지 ‘조치원읍지(2012년)’의 항일독립운동 부분을 살펴보면 3월 13일부터 전의면 전의시장을 시작으로 조치원, 연동면(동면), 연서면(서면), 금남면 등 4월 20일까지 시위를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전의시장 오래된 지도 - 전의 초등학교와 전의역 사이에 위치
전의시장 위치
(연구용역자료 발췌)
‘부강면지(2015년)’에도 부강면의 3‧1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3월 31일에 부강역 부근에서 만세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근대 부강면 지도 - 부강역, 부강중학교, 시장 등
근대 부강면 지도
(부강면지 발췌)
근대식 파란 지붕 하얀 건물과 현대식 벽돌 건물
과거와 현재의 부강역
(부강면지 발췌)

왼쪽의 부강역은 1938년 일제시기에 준공되었으나, 1997년에 철거되었고, 현재는 오른쪽 부강역의 모습이 주민들에게 익숙하다.

당시 부강면은 수운의 요충지였고, 일본인들이 일찍부터 상주했던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동안 부강면은 언론에서도 많이 주목한 지역이었고, 부강면지(p.764~772)를 보면 일제 강점기 언론에 보도된 부강면 이야기
('전국적인 공분을 산 부용면 경찰주재소 일본 경찰의 야만적인 행위' 등)도 있다. 

‘금남면지(1995년)’에서도 3월 23일 금남 대평리 장날임을 언급하며 임헌규를 비롯한 주민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한 내용이 있다.

이렇듯 전의면 신정리에서 시작된 3‧1운동은 마을 여기저기로 뻗어나간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졌고, 연기군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지만 결국 일제의 탄압으로 4월 20일에 독립운동이 소강되고 말았다.

3월의 끝자락에서, 연구용역자료, 백서, 향토지 등 여러가지 기록을 통해 세종시의 독립운동을 소개하였는데, 이러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독립운동을 좀 더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다. 세종시의 독립운동이 횃불형 만세 시위시위가 주를 이루었다는 사실도 역사서의 한 줄로 학습하는 것보다, 보다 여러 시각에서 쓰여진 기록을 통해서 자신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학습할 수 있다.

특히 향토지는,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읍면에 한정되었지만 마을 별 향토지 속에는 옛 마을의 모습, 마을의 숨은 명소, 설화 등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왔는지 그 당시 주민들의 생각도 담고 있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시의 독립운동의 시작인 3월부터 4월까지 전의면부터 세종시 전 지역을 직접 다녀보며 기록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다. 
지금 현재 우리가 걸어다니고 차로 지나치며 보는 부강역의 평온한 현재는 100여년 전에는 독립만세운동 시위를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과거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3월의 끝자락에서.
꺼지지 않는 3월의 횃불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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