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 및 변천 10월 상달고사의 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 따르면, 고구려는 동맹(東盟), 동예는 무천(舞天)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어, 이미 고대 사회에서 10월 추수감사제와 같은 성격의 제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실전경(2024.11)
어릴 적 찬 바람이 휭휭 불어대기 시작하는 10월 중순이 지날 무렵이면, 이제는 아랫목에서 우리하고 좀 놀아주시겠지 하는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다시금 분주해 지셨다. 우물에서 건져올린 쌀을 도고땡이(돌 정구) 앞에 가져다 놓으면 덩더쿵 덩더쿵 아버지와 엄마는 환상의 호흡조가 되어서 쌀가루를 만드신다. 그런다음 미리 삶아 놓은 팥(귀신을 쫒는다는 의미로 빨간 색인 팥을 쓴다 함)한켜를 시루에 앉히시고 그 위에 쌀을 얹으셨다.그리곤 다시 팥과 쌀을 한켜 한켜 얹어 가마솥 뚜껑은 저 쪽으로 치우시고 시루를 솥에 걸으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시루를 걸쳐 놓은 솥과 시루 사이에 김이 빠져버리면 쌀이 잘 익지 않으므로 다시 쌀이나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 번(김이 빠지지 마라고 시루와 솥 틈새를 메우는 것)을 두르셨다.
이렇게 정성스레 불을 때 떡을 하셨는데 이 때 머리카락등이 들어가면 절대 안되고, 번을 둘렀는데 틈새가 생겨 떡이 설 익으면 엄마들은 부정탔다 하여 사색이 되신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찍 떡은 부뚜막, 조왕(우물) 안방(삼신), 대청(성주) 등에 나누어 놓는데 이 때 시루 밑에는 깨끗한 지푸라기를 깔고 작은 소반에 놓는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님들이 家申(가신)들께 감사하고 소지도 올리는데 이 때 부자집에서는 종종 무당들도 불러 대신 축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때는 웬지 엄숙한 분위기라서인지 강아지도 짖지 않았고, 개구쟁이이던 우리들도 조용히 아랫목에 앉아 엄마가 하는 모습을 지켜 보곤 했다.
이렇게 10월 상달 중 길일을 정해 축원을 하고 나면 저녁7시쯤 되는데 이 때부터 우리들이 바빠진다. 일단 엄마가 떡 한 조각을 떼어 화장실 앞에 던진다음 나머지 떡은 봉송(나누어 줄 떡을 싸는 봉지)을 싸는데, 이거는 옆집 순이네, 이것은 뒷집 철수네 등 각각의 몫을 정해 주신다. 저녁 7시밖에 안된 초저녁이지만 시골의 골목은 칠흑이었고, 축원을 받은 귀신들이 아직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기 전이라 골목에서 마주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오싹한 기분을 어찌할 수 없어 벌벌 떨며 달음박질해서 던지듯이 시루떡을 주고 오던 것도 벌써 40년이 훨씬 지나 가물가물한 기억의 저 편 너머에 있다.
시제를 주관하는 운영진들(2024.11)
시향(시제) 이것은 각각의 가택신에게 한해의 무탈과 풍년을 감사하고,다음해의 복을 비는 행위이었다면 부락(동네)별로 조상님에게 지내는 시향(시제)이 또 있었다. 이렇게 10월 상달이 되면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먹을것이 풍성해 지지만 (대신 동네 아낙들은 집안일에 종중일까지 몸이 고되어 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러한 미풍양속이 사라져가고 있다. 세종시 또한 도시화 되고 젊은이들이 모두 타지로 떠나고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던 어르신들이 하나 둘 자연으로 돌아가셔서 과연 이런 것들이 남아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시향(시제)을 지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세종시 연기면 눌왕2리 한산이씨 제실. 음력 10월 7일 동네 입구부터 시끌벅적 지름(기름)냄새가 진동을 한다. 추수를 다한 논에서는 벼 밑동이 다시 새파랗게 올라 온 모습이며, 제실옆의 까치밥 감 열매도 정겹고 지나가는 똥개도 잔칫날인 줄 아는 양 어슬렁 거린다.
과방(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종중 며느리들
(촬영 : 2024.11)
삐거덕 제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왼쪽으로 과방(부엌)에서는 한산이씨 며느리들이 이것저것 제에 쓸 음식을 차려 내느라 바쁘다. 이렇게 과방에서 차려진 음식들은 제실로 옮겨지는데 그것을 운반하는 사람 또한 여러명이 아닌 한 사람을 지명하여 실행한다.
이렇게 제에 쓸 음식을 모두 차려내면 다시금 제 끝나고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바쁘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어렸을 적 보던 하얀 쌀밥에 탕국이 없다. 하얀 거는 똑같은데 쌀밥이 아닌 하이얀 국수만 끝없이 삶아 내신다. 궁금증이 나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시제에 올리는 국수와 음식들
(촬영 : 2024.11)
“그 옛날에는 먹을게 없어서 추수했을때만이라도 실컷 먹어보자 라는 이유도 있었고, 나는 못먹어도 아꼈다가 우리 조상님들한테는 쌀밥을 사발(그릇)가득 고봉(넘치게) 대접을 해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지만 없어서 못 먹는게 아니쟈녀~ 그러니께 간단하게 기냥(그냥) 국수로 먹는거여”
역시 우문현답이셨다.
시제를 지내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시는 문중 어르신들
(촬영 : 2024.11)
이렇게 과방의 아낙들은 아낙대로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제실안에서 남자들은 아낙들이 들여보낸 음식으로 상 차림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 등의 순서에 맞게 배열을 한 후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란히 국수 그릇의 서쪽을 향하도록 놓는다.
시제 지내는 순서
시제를 지내는 문중들
(촬영 : 2024.11)
이렇게 모든 절차에 따라 음복을 하는데 이 때 제를 지낸 사람과 동네분들이 다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멀리서 온 분들에게는 봉송(음식)을 싸서 보내 드린다. 하지만 지금은 음식 대신에 여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평일에 하다보니 외지에 사는 직장인들은 참석을 못하고 근교에 사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회의를 한 결과 내년부터는 매년 11월 첫째주 일요일에 하여 젊은 사람들이 조금 더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제실입구 문과 처마모습
(촬영 : 2024.11)
점점 사라져가는 미풍양속을 아직도 지키고 계시는세종시 연기면 눌왕2리 한산이씨 문중. 지금은 간소화하여 지내고 있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손손마다 제를 모셨다고 하는데 이런것들을 영상과 더불어 남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