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읍_일상

조치원읍의 시계 장인을 찾아서

신승택
게시일 2025.02.10  | 최종수정일 2026.08.18

[글 / 지역문화기록가 신승택]


세종특별자치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조치원읍은 그렇게 크지 않은 소도읍이며, 문헌과 연구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조치원읍의 명칭도 작명설과 와전설 등으로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2012년 발간된 '조치원읍지'를 통해 조치원이라는 지명이 적어도 1770년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치원이라는 지명은 환경적 요인과 지리적 여건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치원장은 조선시대부터 4일과 9일에 정기적으로 5일장이 열렸다고 하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되며 유동인구가 급증하여 시장의 규모가 함께 확장되었다. 조치원읍 평리지역과 상리지역 일대에서 형성된 조치원장은 1917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조치원역 >
(촬영 : 2025-01-16)


조치원시장은 1960년대까지 번성하였지만 1970년대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에 따른 경부도속도로 개통,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글로벌 시장과 대형마트가 등장하며 점차 위축되어 갔다.
 
< 세종전통시장 >
(촬영 : 2025-01-16)


이렇게 시장의 형성과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시계는 소비자들의 일상에서 변함없이 사용되어왔다. 과거에 시계는 아주 일상적인 물건이기도 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평생을 시계수리에 바친 장인을 조치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것을 자신의 명예로 생각하면서 인생 외길을 걷는 정경섭님은 금성당(조치원읍 조치원로 29-1)의 대표로서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기전 정기섭, 정경섭 형제가 운영하던 광성당 >
(출처 : 『조치원의 옛 모습』, 세종문화원)
 
< 정경섭 대표의 금성당 >
(촬영: 2025-01-16)
현재의 위치로는 1993년 12월 1일 이전하였다고 한다.


구수하고 친절하며 시계수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정경섭 대표는 1966년(당시 18세) 거주지 근처에서 시계수리. 판매점을 하는 친구(이한욱) 아버님에게 1966년 1월 2일부터 시계수리기술을 배운 것을 시작으로 시계와 인연을 갖게 된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고, 국내외의 정세도 불안정했기 때문에 취업도 물론 힘든 시대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고급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미래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기술을 배우겠다고 무작정 친구 부친의 가게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계와의 인연은 70-80년대에 5명의 수리공과 함께 가장 바빴던 시기를 보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60여 년간 조치원역 인근에서 시계 수리를 해오고 있다. 특히 예전에는 결혼예물로 시계를 교환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시계의 판매나 수리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 시계 장인이 사용하는 도구들 >
(촬영 : 2025-01-12)


물론 그 당시에는 시계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저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고객들의 시계 하나하나를 정성으로 고치며, 내부를 닦고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각 시계의 특성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과 기술을 인정받아 명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소상공인연합회 자문위원(2009-2019)으로도 활동했다. 2019년에는 세종시 공동브랜드 인증 우수 소상공인으로 선정되며, 그가 걸어온 길이 다시 한 번 인정 받기도 했다.

 
< 시계 장인 정경섭 대표의 방송출연 당시의 모습이 벽에 걸려 있다 >
(촬영 : 2025-01-12)


현대 사회의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계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산업화와 더불어 시계 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다양한 기능을 갖춘 시계는 지속적으로 등장했으나 그와 관련된 전문 연구 기관, 혹은 인재 교육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한국귀금속보석신문 40호, 2023. 3. 13.)

정경섭 대표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후계자를 양성하여 기술을 전수하고 싶지만 젊은 세대의 기피현상으로 쉽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과거 조치원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철도와 시장, 그리고 지역 경제의 흐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심에서 묵묵히 6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정경섭 장인의 삶은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한 가지를 지켜온 장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급변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시간을 지키는 기술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조치원의 작은 가게 금성당에서 시계 장인은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북세종사람들과 소통하는 미디어, 조치원 지명 유래 바르게 알기(1), 2019년4월. 윤철원.세종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 세종시소상공인연합회(2018년12월)
- 강아지풀부동산, 2022년 5월 23일
- 미래세종일보, 세종시 공동브랜드 인증 우수소상공인 현판식 개최, 2019년 2월 25일
- 한국귀금속보석신문, 40호, 2023년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