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동_일상

배움의 끝은 없다: 세종시 어르신들의 문해 여정

정우순
게시일 2025.06.27  | 최종수정일 2026.09.17

[글 / 지역문화기록가 정우순]


세종인재평생교육진흥원은 비문해 및 저학력(초·중학교 졸업 미만) 성인에게 제2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이들의 생활 능력과 사회참여를 높이고자 하며, 이를 위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 문해교육과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문해교육센터로 지정되면서, 기존 기본적인 문해교육사업과 더불어 스마트폰 활용법, 기초금융등 생활문해교육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을 확장 운영하고, 성인 문해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수업장면_조항숙선생님>
(촬영 : 2025.06.11)


“글자를 배우는 순간, 삶은 다시 시작됩니다.”


2025년 6월 세종인재 평생교육진흥원 글꽃학교 교실에서는 조용하지만 의미 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곳은 세종인재평생교육진흥원의 문해교육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대부분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모여 수업을 받고 계셨다. 글을 배우지 못해 일상에서 많은 불편을 겪어왔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배움터였다.


책상 위에 놓인 연습장과 연필, 어르신들의 떨리는 손, 조심스러운 눈빛 모든 것이 낯설지만 소중했다. 어떤 이는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해 평생 도장을 찍고 살아왔고, 어떤 이는 손주가 보낸 편지를 남 몰래 다른 이에게 읽어달라 부탁해 왔다고 한다. 그들의 배움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존재 증명’이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자음 쓰기와 읽기, 짧은 문장 구성. 선생님은 "잘하셨어요", "한 번 더 써볼까요?"라며 따뜻하게 이끌어주셨고, 학습자들3은 반복하여 따라 읽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갔다. 쉬는 시간, 어떤 어르신은 조심스럽게 연습장을 펴 글자를 계속 쓰고 있었고, 또 어떤 분은 연필을 꼭 쥐며 "이게 내가 오늘 써낸 이름이여" 하며 웃으셨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  문해교육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교육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학습자가 있는지 물어보니, 여러 학습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한분이 생각난다고 말씀하셨다. 이 학습자는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학습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글을 배우는 이유를 설명하던 중, 선생님은 그 학습자가 말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회관 앞에서 이웃 어르신이 ‘다 늙어서 뭔 공부여, 화투나 치지’라고 하시길래, 나는 공부하러 간다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신랑(돌아가신 남편) 만나러 가야 되는데, 어디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지 한글은 알아야 찾지 않겠냐’고 하셨대요. 남편을 찾아가서 ‘왜 나 떼어놓고 이렇게 일찍 갔는지 물어봐야지’라고도 하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학습자가 한글 교육을 얼마나 간절히 배우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그 절실함이 얼마나 큰지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단순히 글을 배우는 것을 넘어,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긴 사례라고 생각되었다.


이야기를 전하며 선생님은 그때의 순간이 떠오르는지 다시금 가슴이 뭉클하시다고 하셨다. 필자 역시 마음 깊은 울림을 느꼈다.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읽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찾고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준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또박 또박 한 글자씩 쓰기 연습중 이신 학습자 모습> 
(촬영 : 2025.06.11)


어르신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과 목표를 품고 교실에 모였다. 이*혜 어르신은 아들과 손자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하셨고 김*수 어르신은 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전송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외 김*순 어르신은 자녀, 손주, 며느리에게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고 하셨고, 장*우 어르신은 딸과 선생님께 사랑의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하셨다. 짧은 문장 한 줄에 담긴 인생의 무게는 그 어떤 소설보다 깊고 진했다. 그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배우는 것이 아닌, 삶을 새로 쓰고 있었다.

 
5년차 문해교육 현장에서 학습자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조항숙 선생님은 문해 교육이 앞으로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되어, "이제는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 결혼 이주민, 외국인 등 글을 모르는 다양한 계층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세종시를 비롯해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문해교육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아우르며 새로운 사회 통합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세종글꽃학교 성인문해교육 수료자>
(출처 : 세종의소리)


필자는 글자를 배우는 어르신들의 눈빛 속에서 '배움'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깊고 숭고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모습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회복의 시간이었으며, 마을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순간이었다. 세종시 문해교육 학습자 어르신들이 자랑스럽게 이름을 쓰고, 웃으며 편지를 전하는 그날까지, 마을 기록가로서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계속해서 담아낼 것이다.




 
[참고 문헌]

세종인재평생교육진흥원
 
세종의소리 https://www.sj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43717   2020.06.11.
 
 https://www.sj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72647 2024.12.18 

조항숙 교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