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면_일상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지켜온 부강 홍판서댁

박금옥
게시일 2025.09.16  | 최종수정일 2026.08.21

[글 / 지역문화기록가 박금옥]
 
   세종시 부강면에 자리한 홍판서댁은 고종 3년(1866)에 지어진 고택으로, 병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낸 홍순형의 집이다. 현재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월 속에서도 원형을 잘 간직한 채 지금까지도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집의 진정한 이야기는 건물 자체보다, 이곳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마을기록가로서 이 곳을 둘러싼 사람들을 찾아 보았다.
 
< 한옥의 장점인 시원하게 올려진 분합문 >
(촬영 : 2025.9.2.)

 우연히 홍판서댁을 찾은 날, 뜻밖의 손님을 만났다. 50년 전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한연수씨가 부모님, 그리고 3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 고향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는 “이 건넌방이 바로 제가 태어난 곳” 이라며 손가락으로 집 안을 가리켰다. 당시 여러 세대가 단칸방에 세를 들어 살던 시절이었기에, 신혼살림 역시 단칸방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집 중앙의 우물은 여러 세대가 길어 사용해도 충분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며 누나와 함께 집안의 구조를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강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다 천안으로 직장을 옮겼지만, 외가가 가까이 있어 부강에 오면 늘 이 집을 찾곤 했다고 한다. 연수씨는 “제가 태어난 집이 국가민속문화재가 되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라며 부모님을 모시고 앞으로 자주 찾아와야겠다고 했다.
 
 
<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향나무가 우물곁을 지키고 있다 >
(촬영 : 2025.9.2.)
 
 현재 홍판서댁은 백원기씨가 소유하고 있다. 그는 한옥과 문화유산 보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기에 2016년에 이 집을 매입한 후 큰 수리를 마치기도 했다. 지금도 부강의 김재식 고가 등 다른 고가옥을 보존하며, 사라져 가는 전통 가옥들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 홍판서댁의 안주인 백숙희씨 >
(촬영 : 2025.9.2.)

그의 누님 백숙희씨는 현재 살고 있는 청주에서 이 곳 부강까지 자주 왕래한다고 한다. 정성껏 고택을 관리하는 그녀는 “이곳에서 차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고 전하기도 했다.

 
< 문틀을 깍아내서 만든 잠금장치를 가리키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 임재한씨 >
(촬영 : 2025.9.2.)

홍판서댁을 방문하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날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임재한씨다. 그는 문화관광해설사 뿐만 아니라 세종FM ‘세종납시유’의 진행자이자 세종향토연구소 사무국장, 세종문화원 이사, 시인, 불교문화해설사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며 세종의 문화를 전하는 데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 임재한 해설사가 이끄는 금남면 고사 풍장 보존회 공연 모습 >
(출처 : 세종매일)
 
 
<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
(촬영 : 2025.9.2.)
 
임재한씨는 본래 사업을 하다가 역사와 문화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공부를 시작했고, 자격증을 취득해 2007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생업이라기보다는 봉사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하는 일이기에 시니어에게 잘 어울린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재 세종시에는 아홉 명의 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비암사, 독락정, 전의초수(왕의 물), 운주산성, 세종청사 옥상정원, 홍판서댁 등지를 돌아가며 맡아 설명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유산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그 어느 문화유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崇禎 紀元後 四丙寅 2月24日 申時 上架(1866년 2월24일)
종도리에 새겨진 글씨로 지어진 날짜를 확실히 알수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홍판서댁의 원형 보존 가치다. 16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며 원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목조건물은 불에 취약하고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훼손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홍판서댁은 지금도 안주인의 정성 어린 관리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남아 있다. 방문객들은 집 안 곳곳에서 사람의 체온과 손길, 일상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옛날의 구옥이 아닌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만난 듯한 인상을 받는다.

 
< 3대가 함께 하는 고가 체험 >
(촬영 : 2024.5.10)

한옥을 찾는 이들 중 어린 시절 한옥에서 생활하였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때의 추억을 쉽게 떠올린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족이 함께 살았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던 시절의 따뜻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인터뷰 중에도 예산에서 뚜벅이 여행을 온 방문객이 함께 동석하여, 마치 명절날 고향 사랑방에서 옛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역시 집은 우리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설을 하다 보면 듣는 태도에 따라 반응이 크게 갈린다고 한다. 귀 기울여 듣고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으면 해설사로서 신명이 나서 아는 것을 아낌없이 풀어낸다. 그런 순간이 해설사의 보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홍판서댁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미리 연락하면 임재한 해설사의 맛깔스러운 해설과 따뜻한 차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다. 요즘은 K-컬처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외국인 방문도 늘고 있다. 특히나 자국에서는 볼수없는 온돌 문화를 매우 신기해 하면서 고즈녁하고 정감있는 분위기에 취하여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면 다시 들릴것을 약속하면서 아쉬움을 표 한다고 한다.


 
< 외국인이 남긴 방명록 >
(촬영 : 2025.9.2.)

 
< 한옥에서 빼 놓을수 없는 곳간과 장독대 >
(촬영 : 2025.9.2.)

<  소품 하나에도 문화유산에 걸맞게 정성을 들였다. >
(촬영 : 2025.9.2.)

필자는 지난해 봄, 이미 홍판서댁을 답사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방문이 낮설지 않고  정겨웠다. 옛 친정집도 기와는 다르지만 한옥 구조여서인지 더더욱 친근했다. 누구나 은퇴 후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꿈꾸듯, 넓은 대청마루와 마당이 있는 집은 여전히 많은이들의 로망이다. 필자의 버킷리스트에도"마당있는 집에서 살기"가 있다. 과연 그 날이 올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과 설렘을 안고 홍판서 댁을 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