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 복숭아’라는 이름은 이제 전국에서 인정받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어디서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명성을 지켜내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세종시는 ‘짝퉁 조치원복숭아’가 다른 지역에서 유통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2013년 특별단속반을 꾸려 단속에 나섰습니다.
시는 특별사법경찰 4명과 복숭아연합회장 등 7명으로 특별단속반을 편성해 9월27일까지 집중적인 단속을 펼칠 계획이라고 7월31일 밝혔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복숭아가 조치원복숭아로 둔갑, 유통돼 지역농가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조동권기자, 2013-08-05, 「농민신문」)
그렇다면 조치원 복숭아의 명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조치원 복숭아연구회,연기군 농산물 쇼핑몰 와이팜(2003년), 연기군 농산물 쇼핑몰 와이팜을 2006년에 영농조합법인으로 새롭게 출범 시키며 조치원 복숭아 농가를 이끌었던 유만길님께 조치원 복숭아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조치원 복숭아는 다른 지방 경매장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았어”
놀랍게도 예전에는 위에는 멀쩡한 복숭아를 올리고 아래는 형편없는 복숭아로 속박이를 하는게 태반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조치원 복숭아가 맛과 신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조치원에서 파셨고
그땐 먹고 살기 어려웠으니까
과일을 누가 그리 많이 사 먹나
그러니 다 어려웠지.
나는 용달 운임비 2만원을 주고
청주 도매상, 대전 도매상에 팔러 갔는데
처음엔 조치원 복숭아를 쳐 주지도 않더라구”
그래서 유만길님은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 당시 농촌지도소와 (1998년 지방행정조직 개편을 통해 시·군 농업기술센터로 명칭이 변경)함께 복숭아연구회를 결성했습니다. 당시 연기군의 복숭아 농가 670여 가구 중 50가구를 선별해 작목 기술 교육, 타지역 견학, 병충해 관리법 등 집중 지도를 실시하며 ‘조치원 복숭아를 다시 살리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조치원 복숭아는 품질 향상의 전환점이 되다고 합니다.
< 조치원 복숭아에 대한 꾸준한 열정을 이어간 유만길의 흔적 >
(촬영 : 2025.10.3 / 유만길님 제공)
이후 유만길님은 와이팜을 설립하였고, 2003년 1월에는 와이팜 쇼핑몰까지 차려 농민과 소비자간 직거래 시스템을 시도하였습니다. 이 시도는 곧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 2003.8.2 조선일보 신문 >
(촬영 : 2025.10.5 / 유만길님 제공)
실제로 2003년 8월 2일 조선일보에는 “품질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보내죠”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크게 실리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살펴보면 쇼핑몰 개설 일주일 만에 매출액이 1400만원이 넘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치원 복숭아의 ‘신뢰’가 전국적에 처음으로 명성을 알리는 순간이었다고 유만길님은 회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