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연동면 응암4리는 청주시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연동면에서도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로 인해 마을은 ‘높은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노팽정’, ‘고정’ 등의 이름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 한흥순씨가 소장 중인 1960년대 마을 전경 >
(촬영 : 2026년 2월 20일 / 한흥순 제공)
마을의 형성에 대해서는 청주한씨가 처음 정착한 이후, 경주김씨, 담양전씨, 무안박씨 등이 들어오며 현재와 같은 촌락 구조가 이루어졌다. 연동면지(2020)에 따르면, 주로 청주한씨와 담양전씨가 응암4리에 처음으로 터전을 잡았고, 경주김씨나 무안박씨는 응암1,2리에 정착하여 거주하던 중 분가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응암4리가 응암2리에서 분구되기 이전인 1980년대에는 청주한씨 7가구, 담양전씨 7가구가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 중에서도 청주한씨 문중과 관련된 이야기 또한 마을의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청절 한필적이라는 인물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정자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이 정자를 ‘노팽정’이라 불렀는데, 정자 인근에 큰 팽나무가 있어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이 전한다. 이 팽나무는 20세기 초 이전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회관 인근에는 ‘옹달샘’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과거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식수원이었으며,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매년 음력 정월 보름 무렵에는 이 우물 앞에서 간단한 제를 지냈다는 기억도 주민들 사이에 남아 있다. 제사의 구체적인 방식과 시기, 참여 인원 등에 대해서는 향후 구술 기록을 통해 보다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
< 우물 >
(촬영 : 2026년 2월 20일)
우물 위쪽에는 한때 향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나무는 마을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졌으나, 약 60여 년 전 마을 운영을 맡았던 인물이 이를 외부에 판매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된다. 이후 마을에서는 여러 좋지 않은 일이 이어졌다고 기억하는 주민들도 있으며, 이를 계기로 외부에서 다시 향나무를 들여와 심은 뒤에는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마을이 평안을 되찾았다고도 한다.
< 1997년 범죄없는 마을 증서 >
(촬영 : 2026년 2월 20일 / 한흥순 제공)
현재 응암4리는 과거의 지명과 전승, 그리고 공동체 기억이 함께 남아 있는 마을이다. 특히 우물과 향나무, 정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이 공유해 온 중요한 기억 요소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과정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향후에는 주민 인터뷰와 문헌 자료를 통해 마을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응암4리의 기록은 단순한 전승을 넘어, 실제 기록으로서의 가치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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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일반 자료
연동면지편찬위원회. (2020). 연동면지 마을편. 연동면지편찬위원회.
청주한씨 문정공파 서흥공파. (연도 미상). 청주한씨 문정공파 서흥공파보 (pp.174–320).
- 구술인터뷰
한흥순과의 인터뷰. (2026년 2월 20일). 응암4리 마을 형성 및 향나무 관련 구술 인터뷰. 세종시 연동면 응암4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