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면(芙江面)은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芙蓉面)이었지만,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이 되었다. 출범 당시 6,663명이었던 인구가 2026년에는 고령화와 맞물려 5,100명정도이다. 부강은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서해의 생선과 소금 등을 금강을 통해 마지막 포구인 부강을 통해 내륙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09년 경부선 건설로 철도 개통과 도로교통의 발달로 수운은 점차 쇠퇴했고, 물류의 중심축은 포구에서 철도와 육상 운송으로 옮겨갔다. 부강역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이며 지역 경제의 새로운 기반이 마련되었고, 오늘날에는 세종과 청주를 잇는 교통 거점이자 생활권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음식점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진성민속촌』이다
<사진 1-부강면의 위치 (출처: 부강면지)>
기록가는 세종시내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세종 읍면리에 누가 가볼 만한 곳을 알려주면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그러다가 추천을 받은 곳이 세종 부강면 청연로 125에 위치한 ‘진성민속촌’이다. 맛집이라 유명한가? 아님 뭔가 다른 특색이 있나? 호기심을 갖고 용기내어 혼밥을 하러 갔다. (추천인): “거긴 일찍 가야혀? 오후 2시까지 영업이라지만 재료 소진되면 못 먹어!” (기록가): “그래요?” (‘뭐지? 남들은 그때부터 영업 시작 아닌가?’)
<사진 2-음식점 (촬영:26.6.11)>
<사진 3-음식점 (촬영:26.6.11)>
<사진 4 – 대기실에 즐비한 소품들 (촬영: 26.6.11)>
조용히 뼈 해장국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옛날 물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직원들이 계속 손님들 테이블을 둘러보며 채워주는 게 친절한 모습이 역력했다. 드디어 박인천 대표를 만났다. 1997년에 음식점을 개업했으며 2002년 금융사기 피해로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겪었으나 뚝심 있게 이겨내 지금의 부강 맛집으로 자리 잡은 경우이다. 이미 매스컴에 많이 알려진 듯하다.
기록가는 다른 초점을 잡고 싶었다. 음식점 명칭과 전시된 물품들의 출처였다. (기록가): “이 농기구들은 어디서 온 건가요?” (소장자): “다~아~ 저희 아버지와 제가 사용했던 것들이지요.” (기록가): “아! 그래요? 그러면 아버님과 인터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소장자): “네?! 그럼 땅에서 나오시라고 할까요?” (기록가): “죄송합니다.” 평생 농사만 짓던 집안에서 아들(박인천 씨)이 갑자기 음식점을 한다고 했을 때, 부친의 반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식이 겪을 고생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이 혹시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절에 찾아가 ‘진성민속촌(眞成民俗村)’이라는 이름을 받아다 주셨다고 한다. 진실되고 참되게(眞), 뜻한 바를 이룬다(成)는 이름 속에는 무뚝뚝하지만 깊었던 아버지의 사랑이 녹아있다. (기록가): “제가 모르는, 못 봤던 농기구들도 있는데 좀 설명 좀 해주실래요?” (소장자): “이거는 밭 고를 때 썼구요. 그 다음 건... 콩 터는데 쓰는 도구인데, 이름을 뭐라 하더라?” (기록가): “그럼 가지고 계신 것 중에 가장 의미 있거나 희귀한 거 있으면 보여주실래요?” (소장자): “절구하고 떡메요. 이거 한 100년은 됐을 거예요.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쓰셨는데 다 닳아 구멍이 났어요.” 예전의 농촌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게 나는 두루두루 사진을 찍으며 주로 농기구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일단 좀 더 정확한 명칭과 용도를 듣고 싶어서 금남면에 사셨던 분들을 만나러 보람동 3단지 경로당을 방문하였다.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거는 뭐하는데 쓰는거에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서로 아시는 대로 알려주시며 어떻게 이런 걸 잘도 구했다며 협조해 주셨다. 하지만 사용을 해봤거나 본 적은 있어도 명칭을 정확하게 말하는 데에는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사진5- 소시랑 (촬영: 26. 6.11) >
둥근 투구모양은 소시랑(소서랑)으로 밭을 갈 때 돌을 골라내는 용도로 쓰였다.
<사진6-술체 또는 용수 (촬영: 26. 6.11) >
술체라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확실하게 ‘우린 용수라 했어. 용수박는다.’라고. 동동주나 막걸리를 빚을 때 술을 거르는 도구로 술독 안에 세워 맑은 술만 떠내기 위한 용도이다.
<사진7- 호롱기(탈곡기)와 대박 (촬영: 26. 6.11) >
바닥의 둥근 원통은 호롱기(탈곡기)라 하여 뒤에서 발로 밟아 나락을 터는 용도로 쓰였다. 그리고 오른쪽 북 아래에 놓여있는 네모 상자는 곡식의 부피를 계량하는 도구로 대박이라고 하며 소두대박, 대두대박 두 가지이다.
<사진8- 작두와 바디집 (촬영: 26. 6.11) >
세워져 있는 것은 작두로 소나 말에게 줄 여물(짚, 풀, 대나무 등)을 잘게 썰거나 가을철 수확한 농작물의 줄기·뿌리를 잘라내는 데 사용한다. 그 뒤에 보이는 구멍 난 막대는 바디집으로 베틀이나 가마니틀에서 가마니를 짤 때 날실 사이에 끼워 톡톡 쳐서 촘촘하게 메워주는 나무 도구이다.
<사진9-절구와 떡메 (촬영: 26. 6.11) >
위의 절구와떡메는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했던 100여 년은 된 것으로 너무 낡아서 구멍이 나고, 손잡이가 빠져있는 가장 오래된 농기구로 박인천 대표는 가장 귀한 거로 선정하셨다.
<사진10-무자위 (촬영: 26. 6.11) >
둥근 수레 모양은 무자위 (또는 자조, 수차)라고 하며 평지나 낮은 곳에 흐르는 물을 높은 곳에 있는 논으로 퍼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전통 양수(揚水) 농기구이다.
<사진11- 도로깨 (촬영: 26. 6.11) >
콩을 털 때 썼다는 도리깨(쇠도리깨)로 콩은 껍질(꼬투리)을 강하게 때려야만 알맹이가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콩을 털어냈다고 한다.
세종 부강의 유명 맛집 ‘진성민속촌’은 단순히 뼈해장국을 파는 식당을 넘어, 찾아온 손님들에게 부강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 집안의 역사와 부강리의 옛 생활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마을 민속촌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