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마음에 『부강면지』를 펼쳐 들었다. 부강8리 마을 편을 살펴보던 중 마침내 의문이 풀렸다. 면지에는 ‘용포마을 서쪽에 백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이 있는데, 옛날 그곳에 연꽃이 만발하여 용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도 흐르는 작은 지천(부강천)에 당시의 연꽃 풍경이 부강팔경 속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고관을 지냈다는 홍판서가 이 저택에 머물 때 언덕 넘어 하천에 연꽃도 함께 가꾼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면 홍판서 댁 뒤 언덕 넘어 개울가에 만발한 연꽃을 상상하면서 이 시를 감상해 본다.
팔봉산남용포중 (八鳳山南龍浦中)
팔봉산 남쪽의 용포 마을에
당련수식저금통 (塘蓮誰植抵今通)
연못에 누가 연꽃 심었나, 지금도 피어나네.
부호인거추운백 (富豪人去秋雲白)
부자는 떠나가고 가을 구름 하얀데
군자화류만수홍 (君子花留晩水紅)
연꽃만 남아서 저녁 연못 붉히누나.
엽경청개능경우 (葉傾靑盖能擎雨)
기울어진 잎은 푸른 우산처럼 비를 받아내고
노롱단주반도풍 (露弄團珠半倒風)
이슬은 구슬처럼 실바람에도 이리저리.
유유채사상귀재 (惟有採絲商婦在)
오로지 실 잣는 장사꾼 아내만 남아서
오강소식문귀홍 (吳江消息問歸鴻)
돌아가는 기러기에게 오강 소식을 묻는구나.
<조치원읍 조천 연꽃>
1∼2구절 첫 구절에 나오는 팔봉산은 현재 충북 청주시 팔봉리 일대에 펼쳐진 해발 297m의 아담한 산이다. 아기자기한 여덟 개의 봉우리가 어깨동무하듯 능선을 이루고 있어 팔봉산이라 불린다. 시인은 이 산에서 뻗어 나온 자락에 터 잡은 용포마을을 바라보며 운을 뗀 것이다.
시인은 이 아름다운 연꽃을 도대체 누가 심었기에 ‘지금에 이르도록(抵今通)’ 해마다 변함없이 피어나느냐고 시적인 질문을 던진다.
3∼4구절 부호인거(富豪人去)’는 이곳에 연꽃을 심었던 부유한 이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다른 곳으로 떠났음을 암시한다. 옛 주인이 떠났는데도 가을 하늘엔 흰 구름이 흐르고, 만발한 연꽃은 저녁노을과 어우러져 연못을 붉게 물들인 광경을 선연하게 그려냈다.
5∼6구절 시인은 연잎을 ‘청개(靑盖)’에 비유했다. 청개는 궁중에서 비나 햇볕을 가릴 때 쓰던 푸른 우산이다. 넓은 연잎이 우산처럼 빗방울을 받아내는 모습을 재치 있게 묘사했다.
그 위에서 보석처럼 맺힌 이슬방울들은 거친 강풍이 아닌, 부드러운 산들바람(半倒風)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춤을 춘다.
7∼8구절 그 연못가의 어느 집에 실을 잣는(採絲) 장사꾼의 아내(商婦)가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읊었다. 장사꾼 아내는 부강에서 배 타고 오강(吳江)으로 장사를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남편의 안부를 묻고 있다.
여기서 ‘오강(吳江)’의 지리적 위치를 알아야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30년대 발간된 『연기지』에 합강으로 흘러드는 동진강(미호강) 하류를 ‘오강(吳江)’, 부강 지역을 흐르는 금강을 ‘초강(楚江)’이라 소개하고 있다. 즉, 오강은 바로 미호강 하류를 지칭한 것이다.
<부강면 부강 8리 용포마을 지형도>
현재 용포마을에는 연꽃이 자랄 공간이 없다. 그러나 이 시를 음미하며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홍판서댁의 고풍스러운 기와지붕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백 년 전 이 마을 어디선가 피어났을 연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듯한 상념에 젖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