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면_마을

앨범 속 작은 다큐멘터리, 1983년 산소 앞「상석 세우던 날」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6.09.07  | 최종수정일 2026.09.16

 

글/ 지역문화기록가 김영순

 88세이신 이종분씨는 장군면 장밭뜰에서 태어나 살다가 18세에 석교리로 시집와서 남편은 군대를 가고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가족을 돌보셨다고 한다. 그러다 세종시 건립으로 호탄리로 이사하여 살다가 세종시가 완공되고 나서 지금의 보람동 호려울마을로 자리를 잡으셨다.
 이종분 씨의 앨범을 넘기다가 1983년 어느 날의 풍경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기록가의 눈을 사로잡은 장면들이 있었다.

1.
상석 세우던 날(1983)
황용리에 있는 시아버지 산소에 상석(床石)을 세우던 날이라 하셨다
첫 사진에는 아직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산소의 모습이 보인다.
 
<상석 세우기 전 산소(1983)>
 
  상석(床石)이란 일반 분묘나 능원(陵園)의 봉분 앞에, 주로 정남쪽에 설치해 놓은 석물이다. 흔히 상돌이라고도 부른다. 넓적하면서도 장방형의 돌로 된 상으로 성묘할 때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다. 능원의 상석은 크기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나 일반사대부의 것은 일정하지 않다. 그 이름에 대한 한자표기는 문헌마다 각기 다른데, 조선시대 왕실의 예전(禮典)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석상(石牀)으로, 일반사대부의 대표적 예서인 상례비요(喪禮備要)사례편람에는 석상(石床)으로 각각 표기하고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석을 놓기 위해 땅을 다지는 모습(1983)>


 위 사진에서는 일꾼들이 상석을 놓을 자리를 고르고 삽으로 땅을 단단히 다지며 협업을 하고 있다당시 석교리 같은 농촌에서는 돌을 운반하고 묘역을 정비하는 데 사람 손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중장비를 사용하여 단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이였을 것이다.
 
<상석 앞에서(1983)>


 일을 마친 뒤 상석 앞에서 양복을 입은 분이 일꾼들에게 건넬 수고비를 내려 놓는 손길이 사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서 웃음과 기대감이 확연히 느껴진다.
 
<상석 위에 수고비(1983)>


 한복을 입은 어르신도 손에 돈을 쥐고 있는 것이 수고비를 함께 보태는 듯 하다. 이 날은 주로 남자분들이 주도하는 행사이다 보니 소장자인 이종분 씨는 많은 기억을 하고 계시지는 않았다.
 
<상석 위에 걷힌 수고비(1983)>


 상석을 다 세운 후, 상석 세우는 데에 함께 힘을 모은 사람들에게 수고비로 돈을 주었다고 하는데, 기록가는 이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다. 수고비를 세고 있는 왼쪽 분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거운 돌을 옮기느라 고생한 뒤라서 였을까? 일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그 수고비가 만족해서 였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웃음만큼은 그날의 상석 세우는 분위기를 잘 전해주는 것 같다.
 
<상석 위에서 지내는 제(1983)>

마지막에는 가족들이 모여 제를 지낸다. 상석을 마련하는 일은 단순한 작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상을 기리고 가족이 함께하는 의례로 마무리되었다.
 

2. 곱게 차려입고 돌잔치를 준비하다(1981.11)

 
<한복입은 세 여인(1981)>

 앨범을 넘기던 중, 기록가는 이 한복 사진을 보자마자 참 곱다!’, ‘이사진을 대표 사진으로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자 이종분 씨는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아기의 돌을 맞아 음식 장만하는 와중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셨다.
 집안에 경사가 있는 날, 선명한 빨강, 연분홍, 흰색과 초록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종분 씨와 시누이들이 햇살이 비치는 처마 아래서 다정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돌잔치 단체 사진을 촬영하기 전(1981)>
 
<돌잔치 단체 사진(1981)>



3. 1977년 시어머니 환갑날, 석교리 집 마당에서
 
<시어머니 환갑잔치(1977)>

 1977123(丁巳年 正月 二十三日), 시어머니의 환갑날에는 집 마당이 잔치마당이 되었다. 지금처럼 음식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어른의 예순 번째 생일을 함께 축하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가족들의 모습과 정성스럽게 마련한 환갑 상차림이 당시의 잔치 풍경을 보여 준다. 사진 한 장 안에는 그때의 사람들, 옷차림, 음식과 집의 모습까지 함께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쉽게 볼 수 없는 1970년대 농촌 가정의 환갑 풍경을 보여주는 귀중한 생활 사진이다.
 
 이종분 씨의 앨범에는 가족의 중요한 날과 마을의 일상이 담겨 있다. 조상의 묘에 상석을 세우기 위해 친지들이 힘을 모으던 날, 아기의 돌을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함께 음식을 준비하던 여인들, 그리고 시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 서로 다른 순간처럼 보이지만 그 사진들 속에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삶과 서로 돕고 의지했던 당시 사람들의 관계가 공통으로 흐르고 있다. 이종분 씨가 한 장 한 장 사진을 남겨 두었기에 우리는 이제 그 앨범을 통해 한 여성의 삶뿐 아니라 1980년대 석교리의 가족문화와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앨범이 시간이 지나 한 마을의 기억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