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읍_역사

1970년초 사진으로 보는 조치원 옛 기관과 삶터 둘러보기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6.09.23  | 최종수정일 2026.10.21

 

글/ 지역문화기록가 김효섭

조치원읍은 고향이 아님에도 어쩐지 익숙한 지역이다. 행정구역상 충청남도 연기군에 속했던 하나의 읍이었지만 ‘연기군’은 몰라도 ‘조치원읍’은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2012년에 발행된 ‘조치원읍지’의 내용에 따르면, 1900년대 조치원은 서울과 삼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1905년 1월 1일부터 경부선 조치원역이 본격 운영되고, 신시장(원리, 정리 일대)이 개설되어 구시장(평리, 상리 일원)과 함께 4일, 9일에 시장이 열리면서 충청 내륙의 물류와 상업도시로 발전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런 이유로 잘 알려진 곳이다.

 1911년 경부선으로 편리해진 덕분에 ‘연기군청’이 연기리에서 조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청 소재지가 되었고, 각급 행정기관 및 교육기관이 줄줄이 들어서게 되었다. 물류와 상업 도시로 인구 유입이 많아지면서 1917년 10월에는 ‘조치원리’에서 ‘조치원면’으로 승격되고, 1921년에 조치원-청주간 충북선이 들어서고 조치원-공주간 도로가 개통되면서 1931년에는 ‘조치원읍’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조치원읍에는 충청남도 연기군의 주요 관공서가 대부분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행정과 교육 기관들에 대한 기록이 조치원 대동초등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학교 행사사진 앨범에 흑백 필름으로 남아 있어 본 기록가가 직접 인화하여 그 당시의 실물 사진을 기반으로 조치원의 옛 기관들을 둘러보면서 당시의 삶의 모습과 국가 차원으로 추진했던 과제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았다.

충청남도 연기군청은 1895년 6월에 연기리에 설립되었다가 1911년 조치원역 일대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조치원이 군청 소재지로 그 위상을 높이게 되었다. 1985년에 신흥리에 연기군청 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2012. 7.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군청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ᐸ1970년초 연기군청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조치원읍사무소는 1931년 4월에 조치원면에서 조치원읍으로 승격되면서 읍사무소 역할을 수행하였고, 2015년 12월에 ‘조치원읍 행정복지센터’로 변경되었다.

 
ᐸ1970년초 조치원읍사무소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연기군 교육청은 1952년 6월에 연기군 교육구청으로 발족하였다가 1964년에 연기군 교육청으로 개청하였다. 1991년 12월 신흥리에 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연기군 교육청은 ‘세종특별자치시 교육청’으로 변경되었다.

 
ᐸ1970년초 연기군 교육청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조치원문화원은 1964년 10월 사단법인 조치원문화원으로 발족하였다가 2009년 7월 연기문화원, 2012년 7월 ‘세종문화원’으로 개칭되었다.

 
ᐸ1970년초 문화원(조치원읍내)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조치원 우체국은 1904년 1월 조치원 우편소가 설치되었고, 1921년 5월에 조치원 우편국으로 개칭되었다가 1950년 1월에 조치원 우체국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50년 10월에 개축 준공되기도 했다.

 
ᐸ1970년초 조치원 우체국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조치원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전 구간을 운행 개시하였고, 1921년 11월 충북선이 개통되었다. 이후 호남 전라선의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도 정차하면서 명실상부한 교통요지로 발달하였다.

 
ᐸ1970년초 조치원역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1970년대 초 조치원역 구내 육교 설치를 위한 기공식이 거행되었는데 기공식 행사에 다양한 군중들이 모여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이 색다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동참하고, 자전거를 타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로 다양한 모습이다.

 
ᐸ1970년초 조치원역 구내 육교 기공식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ᐸ1970년초 조치원역 소방훈련ᐳ
(출처: ‘조치원의 옛모습’ 사진집, 2017년 발행)


연기군 보건소는 1951년에 연기군 보건 진료소로 발족되었다가 1963년 1월에 연기군 보건소로 개칭되었다. 2009년에 건물을 신축 이전하였다가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보건소’로 변경되었다.

 
ᐸ1970년초 연기군 보건소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연기군 농촌지도소는 1957년 2월 연기군 농사교도소로 발족되어 1962년에 연기군 농촌지도소로 변경되었다. 1998년 11월에는 연기군 농업기술센터로 변경되었고, 2012년에 ‘세종특별자치시 농업기술센터’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ᐸ1970년초 연기군 농촌지도소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한국전력 조치원출장소는 1913년 7월 대전전기 조치원지점으로 개설되었다가 1961년에 한국전력 충남지사 조치원출장소로 변경되었다. 1990년 5월 연기지점으로 변경되었다가 2012년 7월에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한국전력 세종지사’로 변경되었다.

 
ᐸ1970년초 한국전력 조치원출장소ᐳ
(출처: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필름 인화)


1970년대 초 조치원은 경부선과 충북선 철도 교통의 요충지이자 연기군의 행정. 경제 중심지로 매우 역동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의 흑백 필름에 담긴 행정 및 교육 관공서에 관한 기록물은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을 중심으로 바쁘게 움직였던 당시의 활기찬 삶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관공서와 주요 기관 건물은 행정공간을 넘어 국가의 정책 슬로건을 시시각각으로 전파하는 거대한 홍보판이기도 했다. ‘총력안보, 멸공, 반공, 방첩’의 구호는 냉전의 긴장감이 조치원 거리까지 짙게 배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농촌 근대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이 함께 불타오르던 시기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초가집 지붕을 개량하고 마을길을 넓히자’는 ‘새마을 운동’과 ‘새롭게 바꾸자’ ‘새롭고 밝은 조치원을 건설하자’는 슬로건을 보면 ‘안보적 위기의식과 경제 자립’을 향한 열망이 지붕을 맞대고 있던 1970년 초 주요 기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국가적 대과제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출처 및 참고문헌] 

(1) 조치원읍지(2012년 발행)
조치원 지명 유래 및 교통요지 역할, 1970년대 주요관공서 연혁 등 주요 내용 확인
 
(2) 조치원대동초등학교 소장 흑백 사진 필름(촬영: 1970년초)
조치원대동초등학교 흑백사진 보관 앨범에 첨부되어 있는 흑백 필름 인화
 
(3) 조치원의 옛모습 사진집(2017년, 세종문화원 발행)
조치원 옛 모습 사진 중 조치원역 소방훈련 사진 인용
 
(4)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연기군과 조치원읍 주요 관공서 및 기관의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