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합니다.
'옛날 옛적에' 시리즈에서는 세종특별자치시 내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장소를 탐하고,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기록을 주민이 직접 콘텐츠화한 결과물입니다.
높이 솟은 아파트와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이 피어나는 초등학교 사이에 고즈넉한 한옥과 경건한 묘역이 위치해있다. 어떤 이에게는 오며가며 쉬어가는 '쉼의 공간'으로. 어떤 이에게는 '옛 현인을 만나는 공간'으로. 어떤 이에게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마을 공원이 아닌 어진동의 '초려역사공원'에 대해 알아보자.
초려역사공원은 도심 속에 위치한 사적지이자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려 이유태 선생을 모신 묘역이다. 단순한 공원이 아닌 옛 선인의 영령과 함께하는 학문 수양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너무 딱딱한 공간은 아니니 안심하자. 기본적인 공원 이용 수칙만 지키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원이다. 세종시 역사문화, 인문예술의 심장 '초려역사공원'에 대해 기록물과 함께 살펴보자.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를 만날 수 있는 공원
초려 이유태 선생은 조선 중기 호서지역을 대표하는 개혁 사상가이자 올곧은 선비정신을 보여준 위인이다. 그는 율곡(栗谷) 선생의 학문을 뒤 이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등과 함께 수학하였고,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인물이다.
이유태 선생은 조선 효종 때 지평과 시강원의 진선과 집의를 역임했고, 현종 때에는 공조참의와 동부승지까지 역임한 이력까지 지닌 인물이다. 특히 효종 연간에는 효종의 북벌정책을 뒷받침할 <기해봉사>를 상소했으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파탄난 국정과 민생 경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초려는 이후 예송논쟁에 휘말려 탄핵 당한 후 조정에 복직하지 못했으나, 45세에 오늘날 공주 지역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고, 그가 별세한 후 지금의 초려역사공원 내에 묘역과 신도비를 조성하여 모셨다.
초려 이유태 선생과 그의 부인 평산 신씨는 1714년 오늘날 위치로 합장 이장되었다. 현재 묘소 앞에는 상석이 놓여있고, 상석 전면부에는 '草廬先生之墓 貞夫人 平山申氏 祔左(초려선생의 묘이며, 정부인 평산신씨가 좌측에 합장되어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있다. 상석 앞에는 향로석이 위치하고, 묘의 좌우에는 망주석이 배치되어 이곳에 초려 선생이 모셔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잘 조성된 초려 선생의 묘역도 훼손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과정에서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하마터면 묘역이 사라질 위기였다. 하지만 유림과 문중, 학계의 노력으로 이곳을 초려역사공원으로 재편하여 후대에 초려 선생의 업적을 알릴 수 있도록 보존하게 되었다.
초려를 기억하고 전통을 학습하는 갈산서원
초려선생의 묘역 아래에는 고즈넉한 한옥으로 조성된 '갈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갈산서원은 본래 1694년 지역 사림(士林)의 발의로 공주목 삼기촌 갈산(現 어진동 일원)에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후 대내외적인 부침으로 훼철·복구의 과정을 거치다 지난 2015년 초려 선생의 묘역 보존과 헌양을 위해 역사공원 조성사업과 더불어 갈산서원 이전 복원이 이뤄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갈산서원에서는 매년 이유태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각종 헌양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내의 다양한 역사문화활동을 진행하는 장소로 활용되는 중이다.
이처럼 초려 이유태 선생의 정신을 보전하고, 세종의 역사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초려역사공원. 도심 속에 자리한 공원에 방문하여 머리 속 정리는 물론이고, 잠깐의 쉼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세종의 역사인물 초려 이유태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의 정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시간을 갖아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세종특별자치시
디지털세종시문대전
공주학아카이브
ⓒ 2023, 세종시 마을기록문화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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