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한 줌의 기록, 주담 / 조치원읍_역사

1920년대 조치원에서...!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4.06.21  | 최종수정일 2025.05.02




1920년대 조치원에서...!
 
여러분, 세종시민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조치원역.
조치원역이 언제 생겼는지 알고 있으신가요?

1905년 1월 1일 경부선 개통에 따라
조치원역이 정식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상황은 어땠을까요?
기차가 운영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지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점차 
조치원 주변으로 많이 모이게 되었죠.

실제로 1921년 조치원~청주 간 충북선이 개통되고,
조치원~공주 간 도로가 개설되면서

조치원은 충청권 상업도시로서의
위상
도 갖추게 되었답니다.

그러면, 1920년대 조치원 모습을 좀 살펴볼까요?
 
1920년대 조치원 시장(『조치원읍지』 2012, p.5)

1920년대 조치원 시가지(『조치원읍지』 2012, p.91)

당시 조치원 시장과 조치원 시가지의 모습입니다.
정말 사람이 많죠?

이렇게 사람이 많아지면서 조치원에서는 경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직물공장이 대표적인 업종이었다고 합니다.


1920년대, 직물공장... 제사공장!



제사(製絲)공장이라는 이름만 보면
어디서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공장인가? 생각할 수 있는데
제사공장은 직물, 실 등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조치원에는 대표적으로 두 군데의 제사공장이 있었는데
바로 산일(山一)제사공장과 백정(白井)제사공장입니다.

그 중에 

舊 산일제사(山一製絲)공장은 정말 유명한 공간이죠.
직물공장으로 운영을 하다 해방 후에는 임시 교사로 사용되기도 하고,
삼중편물, 한림제지 등 명칭을 바꿔가다 

세종시 제1호 등록문화재가 되고, 현재는 조치원 1927 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산일제사공장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살펴봅니다.
 
본 저작물은 충청남도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형으로 개방한 저작물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충청남도, 공공누리 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산일제사공장이 1927년에 설립이 되었다는 글은 많은데,
그러면 이 공장은 누가 설립했을까요?

일본인? 조선인? 조선인이라면 조치원사람? 

세종 구 산일제사공장 복원공사 설계설명서를 보면,
‘세종 구 산일제사(山一製絲) 공장은
일본인이 공칭자금 5,000원으로
직공 50여명을 두고 잠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일까요? 

그래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산일제사공장 문화재 등록을 위한 회의록에서는
‘산일제사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에 의하면,

1927년 6월 1일 충청남도 조치원읍 조치원리에서 창립된 것으로 확인’ 
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는 총 2곳에 조치원 제사공장이 나오는데요.
하나는 아까 언급한 백정제사공장,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산일제사공장이 아닌,
고곡(高谷)제사공장
입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제사공장 검색화면 - 고곡제사공장, 백정제사공장
 
조치원읍 남동으로 기재되어있는 걸로 봐서, 고곡제사공장이
산일제사공장으로 추측이 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자료에서는 사장/대표자는 김후진(金厚鎭)이고,
이 정보의 출처는 1949년 판 경제연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경제연감(1949)을 찾아보았습니다.

 
『경제연감』 1949, p.412


 
고곡제사공장은 조치원읍 남동을 소재지로,
관리인 김후근, 업종은 제사로 기재되어있고, 

고곡을 한자로 검색해보니 인명사전으로
일본인 ‘다카야’라는 성씨로도 검색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산일제사공장이 다카야 제사공장이었을까요?

여기에서 더 깊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산일제사공장은 다양한 가치를 가진 공간으로,
이 곳에 대한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 



 
참고문헌
조치원읍지 편찬위원회, 『조치원읍지』, 2012
주식회사 한창 건축사 사무소, 「구 산일제사 공장 복원사업」, 주식회사 한창 건축사 사무소, 2022, p.9.
문화재 위원회, 「2019년도 문화재위원회(근대문화재분과)」 제5차 회의록, 2019, p.35
한국은행조사부, 『경제연감』, 1945, p.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