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종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조치원 문화정원이 있습니다. 현대식 시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편리한 공간이지만 이 공간의 과거는 어떠하였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조치원 문화정원의 모체는 ‘조치원 정수장’입니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던 2013년 3월 이후, 정수시설이 중단되면서 방치되어가고 있던 조치원 정수장은 문화공간화 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그러면 방치되기 전은? 조치원 정수장도 현재 조치원 문화정원처럼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조치원 문화정원 홈페이지의 역사 부분을 보면, 1922년 7월 28일 조치원 상수도 계획이 세워졌고, 1935년5월 16일 준공이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조치원 정수장 운영이 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과거의 기록을 통해 조치원 정수장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34년 조선 총독부에서 생산한 ‘조치원 수도 부설 인가 및 국고 보조의 건’이라는 기록물입니다.
‘조치원 수도 부설 인가 및 국고 보조의 건’
(1925, 조선총독부/ 국가기록원)
첫 장에서 건명이 ‘조치원 수도 부설 인가 및 국고 보조의 건’으로 되어있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총독부에서 조치원 상수도 건설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재원을 지원했는지 기재되어 있습니다.
‘조치원 수도 부설 인가 및 국고 보조의 건’
(1925, 조선총독부/ 국가기록원)
조치원 상수도 설치를 위해 국고 보조금 66,562엔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당시의 화폐가치를 잘 알 수 없지만 정말 큰 돈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같은 기록물 안에서 조치원 상수도 설계도면을 한번 살펴보면,
‘조치원 수도 부설 인가 및 국고 보조의 건’ - 상수도 정수 설비도
(1925, 조선총독부/ 국가기록원)
이 건물이 익숙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곳은 현재도 조치원 문화정원의 대표적인 건물이기도 합니다.
조치원 정수장 전경
(조치원 정수장 문화공간화 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 p.30, 2018)
1930년대에도 건물을 축조하기 위해 이렇게 상세한 설계도를 통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치원 상수도 통수식 임석 신청’
(1934, 조선총독부/ 국가기록원)
해당 건은 조치원 상수도 건설을 완료한 후 조치원읍에서 통수식을 하니 참석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통수식은 물을 처음 흘려보내는 행사로, 관련 기사(조치원 문화정원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110명이나 초대된 큰 행사였다고 합니다.
우측 하단을 보면 당시 연기군조치원읍장인이 찍혀있습니다. 관련 기록 안에서도 다양한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기록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조치원 수도공사 준공인가의 건’
(1938, 조선총독부/ 국가기록원)
해당 건은 ‘조치원 수도공사 준공인가 건’ 기록물로, 쇼와 13년(1938년) 12월 6일 생산된 문서로, 건명은 ‘조치원 수도 공사 준공인가 건’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공문서 기록이 아닌, 조치원 정수장에 대한 기억을 주민 분의 구술채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치원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조적 콘텐츠 개발 및 아카이브 구축 용역 보고서』에서, 조치원발전위원회 위원장 ‘박영수’님은 조치원 정수장에 대해 아래의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열차 급수가 제1목적이었던 조치원 정수장
“ 정수장 기능이 두 가지에요. 강에서 물을 취수하고 정수해서 수도로 쓰는 거 하나. 근데 더 중요한 기능이 있어요. 특! 특! 목적은 경부선 철로가 나면서 화차 증기기관차가 다녔잖아요. 서울이나 영등포에서 물을 넣어 가지구 출발하면 조치원에서 물이 거의 떨어지는 거예요. 침산리 너머에 고려 연립주택 쪽에 물탱크가 큰 게 있어요. 거기서 물을 퍼 저장했다가 증기기관차가 오면 이렇게 틀고 밸브를 열어. 그럼 물이 찰찰 찰찰 증기기관차 화통으로 들어가는 거여. 보통 때는 다른 방향으로 있는데 화차가 들어오면 방향을 틀어서 밸브를 열어서 물을 보충하는 거야. 지금은 급수탑은 없어졌어요. 그래서 정수장은 증기기관차 급수가 1목적이고, 수도로 쓰는 건 사실 조치원 전지역을 다 해주지도 않았어요. 부분적으로 조금 했어요. 일본사람들 자기네 사는 지역을 주로 급수했어요. 변두리는 가지도 않고 역 앞 쪽에만.”
정수장 주변에 형성 됐던 피난민 촌
“정수장 바로 앞이 피난민촌이었어요. 거기가 하천부지로 돼 있어 가지구, 사람들이 판자 집 비슷하게 해서 사는 거예요. 지금도 있어요, 세멘 바르고 지붕도 초가에서 바꾸고 해서 지금 같은 모양이 됐지. 옛날에는 난민촌, 판자촌이었어요.”
조치원 정수장 전경
(조치원 정수장 문화공간화 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 p.30.~32, 2018)
현재에서부터 과거를 찾고, 과거에서 더 과거로 가다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현재도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읍인 조치원읍에는 이렇게 조치원 문화정원, 구 조치원 정수장처럼 숨은 역사와 기록이 있을지 기대하며.
조치원 정수장 전경
(정수장 문화공간화 사업 공유테이블 자료 p.40, 2017)
ⓒ 2024. 김상구 기록리포터
참고자료
'조치원 수도 부설인가 및 국고 보조의 건'(1925, 조선총독부/국가기록원)
'조치원 상수도 통수식 임석 신청'(1934, 조선총독부/국가기록원)
'조치원 수도 공사 준공 인가의 건'(1938, 조선총독부/국가기록원)
'조치원 정수장 문화공간화 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2018, 세종시)
'조치원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조적 콘텐츠 개발 및 아카이브 용역'(2018, 세종시) 조치원 문화정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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