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읍의 봉산리 마을은 세종시의 특산물인 복숭아 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복숭아 산지로 유명하다.세종시 동지역에 살면서 차로 30분 거리인데 직접 산지에 가서 맛있는 복숭아를 사겠다는 마음으로 마을에 들어섰다, 역시 맛있는 복숭아를 흡족한 가격에 대번에 구매하고 나자 시간의 여유가 만들어졌다.
봉산리 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 모습이었고, 그 한가로움에 주변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봉산자락에 있는 마을이니 등산이나 산책로라도 있어 바로 통할 수 있다면 쉼이 있는 마을 관광이나 여행지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동네 분들을 통해 들은 정보는 의외로 문화유적이 많은 문화마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봉산리문화유적인 <연기봉산동 향나무>진입로표지판
(촬영 : 2024.07)
봉산리에 있는 그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1982년에 천연기념물 321호로 지정된 수령 460여 년의 향나무가 있었다. 세종에 살면서 더구나 봉산리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멋진 볼거리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봉산리 향나무의 도도한 자태
(촬영 : 2024.07)
드디어 봉산리 향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수령(樹齡)도 수령지만 나무의 생김새가 일반의 향나무와 달리 독특한데다 도도함과 신비스럽기 까지 하다. 땅과 수평이 되게 가지를 빙 둘러서 옆으로 잎을 펼친 수형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그 줄기의 굵은 몸통은 마치 용이 승천 하는 듯이 용트림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 실측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워낙 크기도 할 뿐더러 접근이 용이하지 않도록 나무를 지지해주는 지지대도 많았고, 둘레에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어 마치도 범접을 허용치 않는 듯도 했다.
게다가 나이가 있어 ‘ 가끔은 병이 나기도 해요,’ 라고 말하는 듯 몸통 아래쪽에는 본래 제 나무색이 아닌 보조물의 누런 색깔의 덧칠이 눈에 띄기도 했다. 나무의 성장과 유지를 돕는 일인데 미관의 이질감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2012년 발간된 조치원읍지에 보면 연기 봉산동 향나무의 크기는 높이 3.2m, 가슴높이 둘레 2.84m, 지상2.3m에서 수평하게 뻗은 수관지름이 10m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향토문화전자대전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연기 봉산동 향나무의 높이는 3.2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2.5m이고, 지상 3m의 높이에서 동서로 11.2m, 남북으로 11m 정도 퍼져 나가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씌여 있어 다소의 차이를 보이지만 자료마다 실측한 시간적 차이로 보인다.
봉산리 향나무의 몸체모습
(촬영 : 2024.07)
현재 촬영한 실제 모습만 본다면, 전체 향나무 하부는 용트림하듯이 서로 꼬인 모습을 보이며 상부는 최대 길이 10m 이상으로 우산살이 펼쳐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만큼 많은 지지대와 받침대 들이 가로 세로로 엮여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모습만은 더없이 도도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이는 방향의 향나무 왼편으로는 물은 말라 있었으나 연못자리(연주당)가 있었고, 그 위쪽으로 새겨진 글씨를 잘 알아볼수 없는 석탑(상원탑)이 향나무의 위용을 받쳐주고 있는 듯도 보였다. 오른편으로는 크지는 않아보였으나 행랑채와 안채의 터가 건물은 없는 채로 자리를 표시하고 있었다.
향나무왼편에 있는 연못자리(연주당)
(촬영 : 2024.07)
향나무왼편위쪽에 있는 석탑(상원탑)
(촬영 : 2024.07)
행랑채와 안채의 집터 모습
(촬영 : 2024.07)
현재는 터만 남아 있는 조치원읍지에 수록된 향나무옆 최씨 종가 모습
(2012년 발간, 총론편, p331)
한편 봉산리는 봉산 마을입구에 ‘충효의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도대체 왜 봉산리가 ‘충효의 마을’일까 궁금했다. 또한 향나무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봉산리 마을회관 앞이자 마을 중앙에 들어선 '충효의 마을' 표지석
(촬영 : 2024.07)
그 단서는 향나무의 안내판에서 대강의 단초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 향나무는 조선 중종 때 강화 최씨의 최완이란 분이 낙향하여 살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최중룡이란 분이 시묘살이를 하러 내려왔다가 향나무를 직접 심었다고 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마을사람들은 이 향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면 마을이 평화롭고 병이들면 마을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믿고 있어 잘 보호하고 있다고 써 있다. 또한 향나무의 향은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한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서원이나 향교와 같이 제사를 모시는 곳에 심었다고 씌여 있다.
이러한 향나무가 있는 봉산리는 강화최씨 집성마을로, 최완[1510~1570]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서울에서 이거·입향 후 500여 년간 발전하여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한 특별한 마을로 동족조직이 강한 모습이 숭모단 제향,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마을 샘 제사로 전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봉산리 강화최씨 동족조직 [鳳山里江華崔氏同族組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숭모단 모습
(촬영 : 2024.07)
강화최씨 묘역 모습
(촬영 : 2024.07)
강화최씨의 유래를 담은 표지석
(촬영 : 2024.07)
강화최씨 입향조인 최완으로부터 9대의 많은 조상들을 모신 숭모단과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면서 마을의 번영은 물론 대대손손 일가를 번성시키고, 나라의 일군으로 봉직하고 부모와 조상을 받들며, 충효와 예를 행한 이들의 업적이 이제 지역의 문화유산이 되어 남아 있으니 단연 ‘충효의 마을’ 지정이야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강화 최씨 일가가 심어놓은 향나무가 엄연히 천연기념물로 봉산리에 있다면 그 최씨 일가의 업적을 뒷받침하는 문화 유적으로 같은 봉산리에 있는 최회정려와 전주이씨 정려를 들 수 있다.
최회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효자문이다. 2001년 5월 31일 연기군의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의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재지정 되었다고 한다.
봉산동 향나무가 있는 곳에서 큰길가 쪽을 보면 향토문화유산 제3호인 최회 정려가 있다. 최회 정려는 아버지 최중룡을 지극한 효성으로 모신 최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지역의 여러 선비들이 그의 효행을 임금에게 글을 올려 그가 죽은 지 67년 후인 1686년 숙종 때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최회의 아버지 최중룡은 마을 입구에 향나무를 심고 집안에 효성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이 향나무가 바로 봉산동 향나무다.
최회정려에 현판에 새긴<효자성균생원 최회지각>
최회정려 표지판과 정려 모습
(촬영 : 2024.07)
열녀 전주 이씨 정려는 조선시대 열녀 전주 이씨의 열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하고 기억하기 위해 나라에서 하사한 명정을 현판으로 걸어놓은 정문으로 내부에는 전주 이씨의 현판이 걸려있으며, 전주 이씨의 행적과 정문을 만든 기록이 쓰여 있는 정려비가 있다. 위치는 효자 최회 정려가 있는 마을입구에서 조금만 마을 쪽으로 들어가면 열녀 전주 이씨 정려(봉산리555-1) 가 있다. 이 전주 이씨 정려는 공주 출신인 전주 이씨 부인은 19세 때 최지철과 부부가 되었으나 1년 만에 남편이 죽자 남편을 따라 죽은 전주 이씨의 사연을 마을 사람들이 조정에 알려 1784년 정조 임금이 열녀 정려를 명하였다고 한다.
전주이씨 정려
(촬영 : 2024.07)
전주이씨 정려 설명 표지판
(촬영 : 2024.07)
이처럼 세종시 조치원의 봉산리가 봉숭아의 산지이자 많은 유적들이 있는 멋진 마을로서 향후 문화마을 투어의 대상지로 각광받고, 우리 지역의 가볼 만한 곳으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있는 지역 문화개발의 동력이자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우리지역의 문화유적을 잘 보전하고 알리는 또다른 노력도 늘어나길 바란다. 참고문헌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기 봉산동 향나무,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122164&cid=67578&categoryId=67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