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의 집
송암 김재식의 집은 가난하여 재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아침부터 농작하고 밤에 독서하고, 근면하게 농사를 힘써 지어 집이 풍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송암 김재식의 향거사시즉사에 대한 고찰」 381페이지 발췌)
부강면지에도 부강의 만석꾼이라는 제목으로 송암 김재식을 설명한 부분이 있지만, 김재식이 거부가 되기 까지의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옛 기록을 보면 송암 김재식은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인물로, 고종의 명으로 관직을 제수받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해당 자료는 『고종실록』 45권으로,
제목 : 육군참장 원우상을 육군법원장에
연월일 : 광무(光武) 9년, 을사(乙巳)(1905년) 2월 1일
내용 : 광무9년 2월 1일, 육군 참장(陸軍參將) 원우상(元禹常)을 육군 법원장(陸軍法源長)에, 충청남도 관찰사(忠淸南道觀察使) 심건택(沈健澤)을 비서원 승(祕書院承)에, 종2품 김재식(金在植)을 내장원 경(內藏院卿)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3등에 서임(敍任)하였으며, 군부 대신(軍部大臣) 권중현(權重顯)에게 참모부 총장(參謀部 總長)의 사무를 임시로 서리(署理)하도록 명하다.
당시 내장원은 조선 후기 왕실의 보물, 세전, 장원 등의 재산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송암 김재식이 내장원경에 제수되었지만, 실제로는 취임하지 않고 집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송암 김재식이 거주하던 집은 현재 부강리에 남아있는 '김재식 가옥(고가)'이겠죠.
송암 김재식의 호를 딴 책이 있습니다. 바로 『송암집』 입니다.
송암 김재식의 시가와 산문을 역어 1930년에 간행된 시문집이 바로 『송암집』입니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렇듯 송암 김재식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서, 거부로서 관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농촌에 대한 시를 쓰고 생활하다 1928년에 숨을 거뒀습니다.
'송암의 집', 즉 '김재식 가옥'은 2020년에 국가등록문화재 검토 대상이기도 했는데요.
1904년 건축이 되어, 2020년까지 보존된 한옥으로, 당시 세종시 내 현존하는 근대문화유산이 소수인 것을 감안하였지만,
내외부의 많은 원형 변화로 인하여 등록 가치가 크지 않다고 여겨져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지는 못했습니다.(출처 : 2020년도 문화재위원회, 제11차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자료 발췌)
그러나 올해, 세종시지정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며, 송암 김재식의 가옥은 다시금 세종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송암의 집'.
부강성당, 홍판서댁 등 주변의 다른 문화재들과 함께 자리잡은 백 년 넘은 김재식의 집에 방문하며,
당시 부강리 마을은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