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한 줌의 기록, 주담 / 조치원읍_역사

세종학(1) : 조치원역, 선로 위에 쌓인 시간들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5.08.01  | 최종수정일 2025.08.04

 


※ 이 글은 세종지역학 기획총서 제2권 『세종 기차역에 스며든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마을기록문화관은 세종시의 문화자원을 다양한 주제와 관점에서 아카이빙하고, 이를 시민과 함께 나누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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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치원읍 관내도 >
(출처 : 안경근 개인소장 자료로 세종시립민속박물관에서 이미지 제공)

< 매일신보사의 1922년 10월 17일 자 기사 - 조치원역 개축 >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https://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4170218〉)



조치원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설치된 중간역으로, 충청 내륙과 수도권·영남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해방 전후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조치원은 철도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조치원역은 오랜 시간 지역 교통의 중심으로 기능해왔습니다.


 
< 경부선 철도 부설 당시 조치원 역사 (1905년 추정) >
(출처 : 한국철도공사)

< 1914년 조치원역사 >
(출처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한때는 청량리와 조치원을 오가는 통학열차가 있었고, 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의 발걸음을 이어주던 플랫폼이었습니다. 조치원역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기억들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불친절하다는 후기
1964년 1월 23일 자 조선일보에서는 ‘『명랑(明朗)한 여행(旅行)』은 구호(□號)뿐인가?’라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많은 승객을 유치하기 위해 철도청에서 ‘명랑한 여행’을 홍보했지만 실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 며칠 전 일이다.
여수발 야간 보통 급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던 중이었는데
조치원역을 조금 지나서 차내 불이 꺼졌다.
전부 꺼진 게 아니라 내가 타고 있던 차량만 꺼졌는데
약 30분이 경과 해도 아무런 소식도 없어
궁금해서 승무원을 찾아가 물어봤더니
천안에 도착해야 고치게 된다고 했다.
금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 가까이나
불이 들어올 가망이 없는 처지인데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다. 

캄캄한 차내에서 움츠리고 앉았을 손님들 생각을
잠시라도 했다면 그토록 불친절할 수는 없을 게다.
명랑한 여행을 도모한다는 당국의 방침도
결국은 선전에만 그치고 말았다.
얼마 안 가서 불은 켜졌다 꺼졌다 하다
정작 천안역에 도착하자 다시 차 내는 캄캄해졌는데
상인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 손님이 나가지 못하느냐고 고함을 질러서
상인들을 내보냈지만 이런 경우도 승객보다 승무원이
앞서서 조치해야 할게 아닌가.

 



사건사고
조치원역에 대한 기록을 찾다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각종 사건사고 기사입니다. 기차 탈선, 충돌, 선로 횡단 중 사고, 무단 진입에 의한 사고 등 다양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는데, 1934년 12월 19일 조선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열차(列車)가 또 살인(殺人) - 경부선내창천교(京釜線內倉川橋)

지닌 십칠일 오후 오시십륙분 조치원역착
팔호남행렬차가 조치원역에서 북으로 류정가량격한
내창천(內倉川) 철교 위에서
륙십오륙세가량 되어보이는 여자를 륵살 시켯는데
원인은 뒤에서 소리치는 괴적에놀내여서 건느든철교를
급히건느랴 하엿스나 시간이미급하야 갈린 것으로
씨명과 주소는 알수업스나
의복으로보와서 걷인은 아닌듯하다고한다 

 



도비노리(飛び乗り)
플랫폼과 기차 안에서는 도비노리(飛び乗り)로 불리던 장사꾼들이 활약했습니다. 본래 ‘도비노리’는 일본어로 ‘기차에 뛰어올라타다’는 뜻이지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철도 현장에서는 기차에 올라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김밥, 삶은 달걀 같은 간단한 음식을 들고 자유롭게 열차를 오르내리며 승객을 상대로 판매했습니다. 빠르게 출입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에 주로 저속으로 운행하는 완행열차에서만 이러한 장사가 가능했습니다. 조치원에서 서울까지는 완행열차로 4~5시간이 걸렸고, 승객들은 열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때 도비노리가 파는 음식은 긴 여정을 견디게 해주는 소중한 끼니이자, 플랫폼의 일상이자 풍경이었습니다.


성심슈퍼
한편, 조치원역 앞에는 80년째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오고 있는 성심슈퍼가 아직까지 영업 중입니다. 이곳은 원래 직행 버스터미널 자리였다고 합니다. 80년 전, 할머니는 그 터 한켠에 작은 나무 궤짝을 놓고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시레이션(미국 전투식량)이나 일제 분(화장품) 등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노점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자리를 잡았고, 지금의 성심슈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조치원역은 한때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오가던 중심지였지만 도시의 중심이 신도심으로 옮겨가면서, 이제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변화 속, 그 자리에 깃든 시간과 사람들의 기억을 찾아내고 보존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합니다. 마을기록문화관은 잊혀가는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의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세종시의 여러 역과 관련된 더욱 다양한 내용은 아래에 연결된 기록물 링크를 통해 『세종 기차역에 스며든 삶의 이야기』원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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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세종지역학센터(김은정, 김화미, 유용환, 이재민). (2023). 세종 기차역에 스며든 삶의 이야기. 대전세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