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면_마을

우리 마을의 역사를 지켜본 약 500년 된 보호수 이야기

아카이브 담당자
게시일 2026.08.05  | 최종수정일 2026.08.31

 

글 / 지역문화기록가 한종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마을의 어귀 혹은 깊은산자락 끝에는 수백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보호수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나무 한그루를 넘어 우리민족의 애환과 그리고 그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진 살아있는 역사책 이자 자연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도시가 화려해질수록 오랜세월을 인간과 함께 숨 쉬어 온 보호수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봐온 보호수는 오랜시간 우리 공동체의 뿌리가 되어준다. 보호수의 역사적 화적 가치를 되집어보고 이를 온전하게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보존의 필요성을 깊은 진심을 담아 되짚어 보아야한다.

보호수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신이자 지친 주민들의 아늑한 쉼터였다. 봄이면 파릇한 싹을 틔어 희망을 전하고 여름이면 거대한 그늘로 땀방울을 식혀주며 가을과 겨울에는 모진 바람을 막아주던 어머니 품같은 존재였다.

 
노송2리 보호수(겨울)


또한 보호수는 우리민족의 참화 그리고 타민족의 근대사와 격동기를 모두 지켜본 역사의 증인이다 그땅에 살다간 선조들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보호수아래 모여 마을의 안녕을 빌고 대소사를 논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나무 한그루에 얽힌 수많은 전설과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정서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노송리 2구 보호수(여름)


수백년간 축척된 생명력은 그자체로 경이감을 자아낸다. 보호수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경관과 생태적 가치는 인공적인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감히 흉내낼 수없는 대자연의 예술품이다. 나무는 한번 쓰러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구백년의 세월을 견뎌온 보호수는 인간의 무관심이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이는 단순히 나무 한 그루를 잃는것이 아니라 그 땅의 역사와와 기억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법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생명의 다리를 지키는 일이다. 보호수를 온전히 보존하고 가꾸는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에 대해 표할 수 있는 있는 가장 깊은 예우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신성한 의무이다. 우리 땅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이 거대한 유산이 앞으로로도 수백년 동안 푸르게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시선과 체계적인 보호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관게자들을 면담하고 나면 허전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바쁜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이 보호수를 관리하자면 여간 힘든게 아니란다. 거기에 보호수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자치단체에서 보내는 보조금으로는 감히 어리댈 수 있느게 아니다. 어떤 주민은 작은 비용이라도 지출 할 경우 쓸때도 많은데 그 보호수 하나가 뭐가 그리 대단하냐면서 어이없는 소리를 한다고 한다. 그저 역사적 식견이나 관심이 적어서 그러는가 보다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또한 동네 개구쟁이들이 보호수 아래에 모여서 불을 놓거나 뿌리를 잘라 내기도한다. 그러면 비록 남의 자식이라도 단단히 혼을 내는 것이 옛날부터 묵시적으로 내려오는 전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공연히 보호수 같은 데에다가 쓸데없는 관심을 두고 남의 자식만 혼낸다고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할 때는 참으로 어디에 호소 할 데도 없고 공연히 그랬다 하기도 한단다.

 
노송리 2구 보호수(봄)


지금 소개하는 보호수도 대단한 시련을 겪은 느티나무 이기도 하다. 오래된 나무이다보니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그곳에다가 불을 놓아 온 동내사람이 모여 불을 끄기도 하고, 어떤 이는 뿌리를 잘라내어 손수레를 만들어 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묵묵히 견디어 197273일 연동면에서는 유일하게 보호수로(세종-21)지정됐다. 약 500년을 넘긴 장수목이며 높이 20미터 직경165쎈티미터 둘레 510쎈티미터를 자랑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느티나무 잎 피는것을보고 한해 풍년과 흉년의 점을 치기도 했다.

나무가 울거나 소리를 내면 흉년이 들고 마을에 좋지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나무를 잘못 건드리면큰 화를 당하기도 한다고하여 베어낸 나무를 서로 가져가기를 꺼렸다고 한다. 
지금 이 마을에는 세 성씨가 세거를 하고 있다.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자수를 파조하는 경주김씨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마을 어귀에는 경주김씨의 내력을 후손들이 기록한 비석이 있다. 또한 한 성씨는 성산배씨 녹야공파가 있다. 집현전에서 활동한 배유를 파조로 하여 지금도 세거를 하고 있다. 그리고 평양서윤을 지낸 김광주를 파조로하는 광산김씨가 지금까지 이어 오고있다. 대략 마을의 생성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세 성씨는 서로 자기조상이 이 보호수를 심어서 지금까지 오고있다고 서로 의견을 내고 있으나 어떤 성씨가 식목 하였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도 이 보호수는 거대한 풍체를 자랑하며 듬직하게 노송1136번지 마을회관 앞에 위치한다. 아주 큰 아름드리를 자랑하며 마을 어르신들의 휴식처이자 쉼터로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있다.